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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서 바라보는 세상
흔히 우리는 기생충이란 속된 말로 먹고 싸는 기계라는 생각을 한다. 편안하고 안전한 숙주의 뱃속에 앉아 그저 먹고 마시며 번식하는 것 이외에는 별 달리 할 일도 없어 보이는 기생충이지만, 사실 기생충도 뱃속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 아무리 기생충이 숙주의 뱃속이라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더라도 숙주 자체의 변화나 외부 환경에 완전히 무신경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치 자유생활을 하는 생물들이 주변 환경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에 다양한 변화를 주듯, 기생충도 숙주와 외부의 환경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일견 숙주라는 감옥이자 보호막 안에 살고 있는 기생충이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또한 기생충이 주변 환경을 인식할만한 감각기관이나 신경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 것이다. 기생충은 보통 정확히 지정된 숙주에서 지정된 패턴을 따라 지정된 서식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주로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서식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은 기생충이 이러한 지정된 패턴에 필요한 특정 감각기관과 신경계면 충분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게 되었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기생충은 매우 단순한 생물이라는 고정 관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기생충이 실제로는 자유생활을 하는 비슷한 생물들 보다도 복잡하고 민감한 감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1,2) 즉 기생충은 우리 생각처럼 뱃속에 앉아 먹고 싸는 것 이외에는 관심 없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뱃속에 앉아 숙주라는 벽 너머를 내다보고 있는 은둔한 현자에 가깝다는 말이다.
기생충은 우리와는 달리 두겹의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외부 환경과 숙주라는 환경이다. 일단 숙주라는 환경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숙주라는 환경은 기생충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숙주의 수명이나 성별, 저항성, 영양상태, 다른 기생충의 존재 유무 등은 기생충의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항들이다. 숙주의 수명은 숙주의 장에서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생존하며 번식할 수 있는 기생충에게는 꽤 중요한 요소가 된다. 숙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기생충은 성장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보다는 최대한 많은 알을 생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기 때문에 숙주의 수명과 기생충의 병독성이나 번식력에 관계가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이 또한 기생충 질환의 유행과 병독성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양상태와 다른 기생충의 존재 유무 또한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 숙주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숙주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숙주의 영양상태가 낮아질 수록 기생충은 더 많은 알을 생산한다.



촌충의 구조를 보면 머리(Scolex)에서 새로운 마디가 꾸준히 생겨나고, 이 마디들이 점차 발달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알이 가득찬 알집(Gravid)으로 바뀌게 된다. 촌충에 감염된 쥐를 수일간 굶긴 결과, 뱃속에 있는 촌충의 행동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3) 영양상태가 양호하던 때에 비해 새로 생성되는 마디 수가 줄어들고 기존에 있던 마디들을 발달시켜 알집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더 빨라진 것이다. 즉 새로 무엇을 해보기 보다는 현재 있는 마디들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알을 생산하는 방식을 택해 숙주의 영양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최대한의 번식을 노린 것이다. 한 숙주 내의 다른 기생충의 존재 유무는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기생충의 존재가 도움을 주기도 하고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숙주 내에서 동일한 공간과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기생충이라면 다른 기생충이 숙주의 에너지를 착취하기 전에 지금 당장 숙주에게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빨아 들이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따라서 병독성도 같이 증가하게 된다.(4) 반면 일부 기생충의 경우 숙주의 면역체계를 조절해 다른 기생충이 숙주의 체내에 들어오기 쉽도록 도와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지 않는 이상 각각의 기생충이 가진 병독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5)

외부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도 기생충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좋은 예로 'spring rise'라는 현상이 있다. 봄이 되면 가축들의 대변에서 관찰되는 기생충 알의 숫자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하는 현상이다. 즉 기생충이 외부의 기온 변화를 감지하여 대변을 통해 배출된 알들이 생존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을 때 번식력을 높인 것이다. 기생충이 외부 온도 변화를 감지 할 수 있을리는 없으니 계절의 변화에 따른 숙주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 계절의 오고감을 안다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개구리의 방광에 기생하는 흡충은 몇달, 혹은 몇 년에 한번 찾아오는 비 오는 날에 짝짓기를 위해 땅 위로 개구리가가 뛰쳐나가는 그 날에만 알을 낳는다. 그 날이 아니라면 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번식을 위해 중요한 또다른 외부적 요인은 바로 외부 환경에 감염시킬 만한 다른 숙주들이 충분히 있냐는 것이다. 눈도 없는 기생충이 외부에 어떤 생물들이 있는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생충의 눈을 대신해 주는 것은 바로 이런 외부적 반응에 자극하는 숙주 자신이다. 예를 들어 바다에 사는 갑각류는 포식자인 물고기들을 보지 않고도 피하는 법을 알고 있다. 바로 물에 녹아있는 물고기의 점액 농도를 통해 포식자가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 아는 것이다.(6) 갑각류에 사는 기생충은 숙주인 갑각류의 이러한 능력을 그대로 끌어다 쓰고 있다. 만약 갑각류의 기생충이 물고기를 숙주로 한다면 물 속 점액 농도가 높을 때 갑각류의 행동을 조절하거나 더 많은 알을 생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순간에 최대한의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아직도 기생충은 외부적 자극에 별 다른 감각 없이 살아간다는 고정 관념이 있어 기생충과 자극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기생충이 숙주의 호르몬 분비에 깊이 관여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외부적 자극에 의한 호르몬 변화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가장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하지만 기생충이 어떻게 외부 환경에 반응하고, 또 이러한 변화가 기생충의 행동에 궁극적으로 어떠한 영향 미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기생충 질환의 병독성과 역학을 이해하는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기생충 박멸을 위해 하고 있는 노력들이 현실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Reference:
1. Sukhdeo, M.V.K. and Sukhdeo, S.C. (1994) Optimal habitat selection by helminths within the host environment. Parasitology 109, 41–55
2. Reuter, M. et al. (1998) Organization of the orthogon – main and minor nerve cords. Hydrobiology 383, 175–182
3. Sukhdeo, M.V.K. and Bansemir, A.D. (1996) Critical resources that influence habitat selection decisions by gastrointestinal parasites. Int. J. Parasitol. 26, 483–498
4. Taylor, L.H. et al. (1998) Virulence of mixed-clone and single-clone infections of the rodent malaria Plasmodium chabaudi. Evolution 52, 583–591
5. Thomas, F. et al. (1998) Exploitation of manipulators: ‘hitch-hiking’ as a parasite transmission strategy. Anim. Behav. 56, 199–206
6. Tinsley, R.C. (2001) Parasites in Hostile Environmen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by byontae | 2009/10/27 01:04 | Parasite Rex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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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opord at 2009/10/27 02:15
흡사 잠망경으로 물 밖을 바라보고, 소나로 물 속을 바라보는 잠수함 같군요.ㅎ 그러고 보니 기생충에 대한 사랑과, 감염을 방지하려는 연구 사이엔 어쩔 수 없는 갭이 있는 듯요. 슬픈 사랑인 듯...
Commented by 플루토 at 2009/10/27 09:30
원유값이 오르고 주택 대출이 폭등하면 전반적인 물가가 오르고 직장은 불안해지면서 가정에서는 외식을 줄이고 마트에서는 번들상품이 더 잘팔리는것과 같은 순환인것 같네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10/27 12:36
제가 봐도 잠수함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09/10/27 12:43
눈을 가리고도 바깥을 내다보는 점쟁이 느낌도 드네요.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10/27 15:09
분재(또는 난?)의 경우도 꽃을 보려면 물과 양분을 줄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경우도, 경제적으로 지지리도 못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애를 더 많이 낳는 것과 비슷할려나요? <-- 예전에는 자기 숟가락은 자기가 물고 태어난다는 말을 많이들 했었지요. ㅎㅎ
Commented by sunwu at 2009/10/29 22:33
반드시 (가) -> (나) -> (다) 가 아니라 그다지 관계없던것이 매개체인 (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은 것들.
생물의 진화를 자극하는건 접촉한 화학물질뿐만이 아니니까 반드시 숙주와 기생의 대응이 1:1이라고 볼 수는 없지...
기생충은 어쨋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니까 집안에 뭐든 변화가 있으면 무작정 나갈라고 하는거일수도?
Commented by sunwu at 2009/10/29 22:38
즉 기생충이 pressure를 어떻게 감지하느냐를 알 수 있다면 그게 어느쪽인지 알 수 있겠지.
생물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지 않아. 그저 밀리는대로 밀려다닐뿐이지.
Commented by ㅁㄴㅇ at 2009/10/30 03:00
저개발 국가의 인구성장률이 대체로 높은 이유도.. 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Commented by ENCZEL at 2009/10/31 00:05
제 몸속의 변화는 제 자신도 때로 알기 힘들 때가 있는데 기생충은 몸 안에서 다 감지하고 있다니,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기생충이 숙주보다 우월한(....) 면도 있는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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