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생명이 태양에너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모든' 생명이 태양에너지에 의존 하여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태양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라는 것은 아직 우리가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모든 생태계는 생산자인 광합성 생물들과 식물들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양분을 생성하면 일차소비자가 이러한 광합성 생물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또 이차소비자는 이런 일차소비자를 잡아먹어 에너지를 얻고, 분해자는 죽은 생산자, 일이차소비자를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시스템을 상상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태양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위치와 환경에 있는 생물들은 대부분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보는 생태계들이 이런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은 어떨까.
-솔포로부스
Sulfolobus. 아키아의 일종인 이 생물은 심해 열수구에서 발견되며 황을 산화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pH2-3, 70-80도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앞서 아키아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부 생명들은 빛 한점 들지 않는 수천미터 깊이의 심해나 지층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지 세균 같은 단세포 생명들 뿐 아니라 다양한 다세포 생물들이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태양 빛을 보지 못하고 성장하며 번식하여 복잡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생물들은 화학 무기 영양 생물(Chemolithotrophs)들을 생산자로 삼아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주로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무기 영양 생물들은 수소, 암모니아, 황, 인산, 철 등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생성한다. 식물들이 태양 에너지와 대기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원료 삼아 에너지와 유기물을 생성해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이다. 이러한 무기물을 산화시키며 생성되는 에너지는 ATP를 생성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해주고, 주변에 존재하는 탄소 화합물을 통해 유기물을 생성한다. 이렇게 생성된 에너지와 유기물은 다른 생물들에게 먹혀 또 다시 생명과 물질, 에너지의 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비단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 이외에 환경 자체에도 무기 영양 생물들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지층 깊숙한 곳에 사는 무기 영양 생물들은 무려 땅 속 3km 깊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러한 생물들은 여러 무기물을 유기물로 변환시키고 지질을 변화시켜 돌을 토양으로 바꿔 다른 생명이 살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해 준다. 또한 바다 수천미터 아래 심해 열수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과 황화합물을 이용해 살아가는 박테리아들은 심해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해 뜰 날 없는 곳에서도 생물들은 살아가고 있으며, 복잡한 생태계를 구성해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