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함께라면 Parasite Rex



아마도 생명이 탄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좀 굴린다는 녀석들은 기생이 꽤 괜찮은 방식이라는걸 깨달았을것이다.
생명이 존재하는곳에는 그 생명에 기생하는 다른 생명이 있고, 그 기생하는 생명에 기생하는 생명이 또 태어난것은 당연한 이치.
돌려 생각해보자면 진화의 모든 과정에 걸쳐 기생은 일종의 배경과도 같은 역할을 했을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피식) 인간도 그 그늘에서 벗어날수는 없었고,
인간의 면역 시스템 역시 몸 안에 항상 수마리의 기생충이 존재한다는것을 가정한채 진화해왔다.
특히 장내 촌충, 편충, 회충등의 장내 기생충은 생각보다 인간의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는데
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기생충에 노출된 인간의 면역 시스템은 크게 두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Th1과 Th2 반응이 그것이다.
Th1은 주로 소형 단세포 기생충에 대한 면역 반응으로,
감염 지역에 염증을 일으켜 일격에 백혈구와 항체를 쓸어넣에 일격타파를 노리는 방법.
물론 조직내에 상당한 부담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전력을 집중할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장내 기생충의 경우에는 염증만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크기가 크고,
둘째로 보통 장내 기생충의 감염은 수주에서 수개월, 수년까지 매우 장기간 이어지기 때문에
염증처럼 조직이나 장기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 면역방식을 사용하면 장기부전으로 기생충보다 사람이 먼저 죽게 된다.
그래서 선충류등의 커다란 기생충에 감염되면 몸은 Th2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데,
다양한 종류의 Interleukin을 생성하여 기생충의 전이를 막고 염증 발생을 억제한다.

즉 이말은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의 체내에는 일정량의 Interleukin이 항상 생성되고 있고,
이 소량의 Interleukin이 외부의 물질에 대한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것을 막아준다고 생각해볼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현대 선진국 처럼 기생충에 노출될 일이 전무한 인간은 Interleukin의 생성이 저하되고,
그만큼 외부 염증 물질에 노출에 훨씬 과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세울수 있다.
Hygiene hypothesis라고도 불리는 이 가설은, 인간이 점차 과거 항상 노출되어있던 알레르기 물질이나
혹은 기생충, 박테리아등에 적게 노출되면서 결국 외부의 자극에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여
현재 선진국형 질환으로 불리는 아토피, 크론병 등등이 발병한다는 가설.
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 일부 질환에 있어서는 꽤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듯.
사실 현대 질병에는 수많은 기저 원인이 있을테고 Hygiene hypothesis도 그중 하나라고 보는게 옳을듯 하다.

Elliott et al의 논문을 보면 기생충에 감염된 어머니를 가진 아기에 대한 아토피성 피부염 발병률을 조사했는데,
어머니가 기생충에 감염된 경우 9%의 아기가 피부염 증상을 보였고,
Albendazole로 임신중 기생충을 치료한 어머니를 가진 경우 약 39%의 아기가 피부염 증상을 보였다.
샘플 숫자가 100여명 정도로 매우 작고, follow-up도 없다는 점에서 기생충과 피부염을 직접적으로 연관짓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어머니에게서 태반을 통해서든 모유수유를 통해서든 기생충의 면역 반응 물질에 접촉하는것이
이후 과민한 면역 반응을 경감시키는데 간접적으로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정도로 해석해볼수 있을듯.

크론병(Crohn's disease)또한 불치병으로 알려진 자가면역질환중 하나인데 영미권을 비롯한 선진국,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꽤 빠른 속도로 환자가 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크론병 역시 Hygiene hypothesis로 설명되는 기생충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것이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대표적 예인데,
장내 기생충이 활개치는 동네에서는 거의 보고되지 않는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로 돼지 촌충을 이용해 크론병을 치료하거나, 증상을 완화시켜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Summers et al의 논문
을 보면 Trichuris suis의 알 2500개를 매3주에 한번 24주간 경구투여하여 경과를 지켜보았는데,
29명중 21명의 환자에게서 증상이 호전되었다 한다.
현재 판매를 목적으로 개발중에 있다는데 어떤식으로 나올지 참 궁금하다.

불과 20여년전만 하더라도 기생충을 못잡아 죽여서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서 기생충알을 돈주고 사먹는 세상이 올게 될지도 모른다니
세상만사 기생충만사 인간만사 세옹지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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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꼬깔 2007/12/01 13:13 # 답글

    흠... 확실히 그렇군요. Hygiene hypothesis는 얼핏 들어본 것 같습니다. 자가면역이상의 증상과 관련해서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이를 야기했다고 얼핏... ㅠ.ㅠ 그래서 애들은 흙에서 굴려야 한다고... (이게 뭔 말인가... :D) 아무튼 말씀처럼 기생충만사 새옹지마, 인간만사 새옹지마로군요. :)
  • orientblau 2007/12/01 13:31 # 답글

    참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이네요...
  • BigTrain 2007/12/01 13:38 # 답글

    뭐든지 과유불급이군요. -_ㅜ
  • Charlie 2007/12/01 14:26 # 답글

    아.. 저 논문 저도 읽었어요. 자가면역을 치료하기 위한 기생충이라는 생각이라니..
    그것 말고도 디톡스 요법(..그러니까 커피관장같은거 말고...)에서도 기생충을 시도한다는 논문도 같이 읽었었는데.. 정말 인생은 여지경.;
  • 세라r 2007/12/01 15:08 # 답글

    으앙 변태님 너무 유명해 지신거 같아요 ㅠㅠ

    요즘 들어서 변태님과 같은 지식을 쌓고 계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은 추세인데
    그래도 지금처럼 우리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들을 위해서 친절하고 쉽게 설명 해주실꺼죠?

    안그래도 점점 늘어나는 전문용어땜에 갈수록 이해 하기 힘들어지는 포스팅도 자꾸 늘어간다는 ㅠㅠ
  • 철관음 2007/12/01 18:18 # 삭제 답글

    기생충 알을 약으로 먹다니, 아아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ㅠㅠ 치료(?)가 끝나면 구충제를 먹나요, 아니면 재발을 막기 위해 계속 기생충과 함께 살아가는 건가요?
  • byontae 2007/12/02 21:08 # 답글

    꼬깔님//위생과 질병의 관계가 위생의 향상이 질병을 억제한다는 기본 관념에서 완전히 뒤집혀진다는게 참 아이러니 한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애들을 흙에서 굴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무슨 면역결핍에 걸린것 마냥 키울필요 또한 없는것이겠지요.

    orientblau님//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지만, 상식의 전환이라는게 참 재미난것 같습니다.

    BigTrain님//뭐든 중도를 지키는것이 중요한것이겠지요.

    Charlie님//재미난 생각이지요? 설마 기생충 알을 그대로 파는걸까 궁금해집니다.
    여튼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라는 말이 지금에도 그대로 맞아들어가는것 같습니다.

    세라r님//전문용어 설명 포스팅이라도 하나 새로 만들어볼까요.
    설치형 블로그에서는 팝업으로 단어 설명을 뜨게 할수 있던데 이글루스에서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관음님//돼지 촌충 같은 경우에는 인간이 숙주가 아니어서,
    알을 먹으면 장내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배설되어 나오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만일을 위해 기생충약도 후에 투여를 하겠지만 일단 기생충에 노출되어 체내에 어느정도 면역 물질이 생기면
    그것으로 어느정도 장기적인 조절능력을 부여받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리리아 2007/12/02 22:01 # 답글

    지난 학기에 배우던 질병 중 하나가 크론병이었는데 기생충 알이 효과가 있다니 흥미롭네요.
    예전 중세시대엔 질병은 죽이지만 인간은 살리는 것을 목표로 조절된 독을 약으로 사용했다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 어부 2007/12/02 22:48 # 답글

    역시 옛날처럼 먼지 속에서 구르던 시대가.... (응? 이게 맞다니.....-.-)
  • helena 2007/12/03 15:10 # 삭제 답글

    정말 유익한 글이네요..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늘 좋은 정보에 감사..
  • byontae 2007/12/03 19:10 # 답글

    리리아님//완치까지는 아니고 호전 정도인듯 하지만, 제대로된 치료법도 없었던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인거겠죠.
    기생충의 특정 Antigen만 뽑아서 약으로 만들수 있다면 완벽할텐데 아직까지는...

    어부님//적당히 흙도 만지고 이것저것 주워먹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크는거죠(.......)

    helena님//감사합니다. :D
  • 철관음 2007/12/05 08:40 # 삭제 답글

    인간이 숙주가 아니어도 인체에 면역물질은 생기게 하나보죠? 그럼 인체가 다른 동물에게는 해가 되지만 자신에게는 별 상관없는 기생충도 기생충으로 인식을 한다는 얘긴가요?
  • byontae 2007/12/06 22:34 # 답글

    철관음님//꼭 감염이 생기는게 아니더라도 몸 안에 이물이 들어오면 면역물질을 생성하지요. 또 Trichuris suis 같은 경우에는 바로 몸 밖으로 배출되는게 아니라 몸 안에서 부화하고 잠시 머무르지만 환경이 맞지 않는건지 어떤건지 부화한후 얼마 안있어 몸 밖으로 배출되어 나오니까 몸 안에서 면역물질을 만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요.
  • 철관음 2007/12/07 22:48 # 삭제 답글

    음, 이물질에 반응해 면역물질을 생성하게 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꼭 기생충알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그렇지 않고 인체가 기생충으로 인식할 어떤 이물질을 넣어줘야 필요한 면역물질이 생긴다는 얘기라면, 그 건 인체가 사람에겐 해로운 기생충이 아니더라도 모든 기생충에는 같은 (혹은 비슷한)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가 되지 않나요?
  • byontae 2007/12/08 01:18 # 답글

    철관음님//다른 병원체나 이물질로도 어느정도의 면역반응을 이끌어 낼수 있겠지만, 여기 예를 든 크론병 같은 경우에는 장에 자가면역반응이 일어나는 경우니까 장에 특화된 장내 기생충을 투여해서 특정부위에만 Th2 면역반응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는게 좋은것이지요. 인간 면역 체계와 반응하는 기생충의 특정 단백질만을 추출해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 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격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겠습니다. 일단 원래 인간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아닌 녀석이 몸에 침입하더라도 외부 물질이니까 당연히 인간은 면역반응을 보이겠지만, 그 면역반응을 충분히 이끌어내기 전에 면역체계에 의해 죽거나 배출되니 효과가 적겠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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